제목 | [위클리공감] 한국형 젠더리스 문화 차근차근 진화 중 | ||||||||
---|---|---|---|---|---|---|---|---|---|
작성일 | 2017-10-23 | 조회 | 11105 | ||||||
첨부파일 | |||||||||
한국형 젠더리스 문화 차근차근 진화 중
[고정관념 깨고 도전하는 여성들] ‘유리천장’, ‘유리장벽’ 동시에 없앤다
도전은 흥미롭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 여겨졌던 여성의 도전은 더욱 그렇다.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약자에서 강자로의 전환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유리장벽을 깨는 여성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여성의 평등과 발전을 이루고 성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정책을 통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군화를 신은 여성, 리본 모양 셔츠를 입은 남성을 가리켜 ‘젠더리스’라고 한다. 남성과 여성의 전유물로 느껴졌던 소품이나 색상을 소화해내는 것을 가리키는 패션계 용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분홍색 셔츠를 입은 남성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편견에 갇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전형성을 탈피하는 것이다. 이들의 선택은 단순한 성별 파괴가 아니라 자신의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패션 감각이다.
패션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젠더리스는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직업 분야에서 성별 고정관념으로 가로막힌 장벽을 없애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고위직 승진을 가로막는 장벽인 ‘유리천장’과 반대 개념이다. ‘유리장벽’을 허무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남자다움’, ‘여자다움’과 같은 성의 구분을 넘어 영역을 파괴하고 그 본질에 중점을 둔다. 젠더리스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은 직업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시작된 경우가 많다. 주변을 의식하는 사람에 비해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장벽을 없애며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에겐 아직까지 ‘최초’라는 수식어도 따른다.
성평등 문화 확산, 젠더리스의 출발점
오늘날의 젠더리스 문화를 살펴볼 때 성평등을 떼어놓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젠더리스 문화는 유리천장과 유리장벽을 함께 없애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을 제정했다. 그해 세계여성대회는 세계 각국이 성평등 정책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동참했고, 20여 년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평등을 촉진하며 열한 차례의 개정을 통해 2014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부 개정돼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여성발전기본법이 낙후된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리고 여성의 능력을 계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양성평등기본법은 모든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와 책임, 참여 기회를 보장해 실질적인 양성평등 사회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즉 ‘여성 발전’에서 ‘실질적 양성평등 실현’으로 나아간 것이다.
2013년부터 국가예산이 남녀 평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한 ‘성인지예산제도’도 성평등 문화 확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는 예산 편성에서 성차별을 줄이고자 도입됐다. 예를 들면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남녀 화장실 크기가 똑같아서 남성 화장실에 비해 여성 화장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각 칸에 들어가서 일을 보는 여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크기만 같게 화장실을 만드는 게 곧 평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가 성인지예산제도를 곳곳에 도입해 보이지 않는 남녀 차이를 예산에 반영하고 정책을 집행하면서 문제점이 개선되고 있다.
고용의 성차별을 해소하는 방안도 마련돼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과 500명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이 여성 고용 기준을 달성하도록 하는 정책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여성 근로자 및 관리자의 비율이 규모별, 동종 업종 평균의 70에 미달한 기업의 경우 시행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행 실적을 점검하는 제도다. 10년간 AA는 여성의 고용 신장을 이루는 데 이바지해왔다. 제도가 시행된 첫해인 2006년 전체 10.22에 불과하던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2016년 20.39로 10.17p 증가했다. 사업장 형태별로는 공공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이 16.47, 민간 기업이 21.16로, 민간보다 공공기관이 경직돼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한편 여성 고용 비율은 공공기관 38.27, 민간 기업 37.71로 나타났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의 여성 고용 비율이 71.25, 관리자 비율이 52.26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중공업(1차 금속, 운송장비)’은 여성 고용 비율이 5.88, 관리자 비율 1.50로 가장 낮았다. 올해부터는 동종 업종 대비 여성 고용이 70 미달한 AA 부진 사업장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AA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기업들이 여성 고용 증진을 위해 자체적인 노력을 펼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민간 영역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를 파악할 수 있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 7월 한국경제연구원은 매출액 600대 상장기업(금융·보험업 제외) 중 2012~2016년 남녀 비율 분석이 가능한 531개 기업을 분석·발표했다. 그 결과 여성 비율이 2012년 21.3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6년 22.6를 기록했다. 인원상으로는 2012년 22만 7028명에서 2016년 25만 4452명으로 약 2만 7000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업종별로 살펴보면 여성 비율이 가장 낮은 업종은 건설업으로 하순위에서 변화가 없었다. 여성의 직업 선호가 편중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여성 고용을 증진하려는 노력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사회적 지위 또한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44.6로, 2000년 31.5에서 꾸준히 증가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4급 이상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10.6로, 2015년 처음 10를 넘어섰다. 2000년 2.1에 불과했으나 15년 사이에 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법조계, 의료계, 정치계에서도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2015년 판사, 검사 등의 법조인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4.1로, 2000년 3.1에 비해 8배 정도 증가했다. 2016년 여성 의사는 25.1, 여성 약사는 64.0로 나타났다. 총 300명의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은 51명으로 17.0를 차지했으며, 2014년 실시한 지방의회 의원 선거의 여성 의원 비율은 전체 3687명 중 845명으로 22.9였다.
여성 진출 확대, 정부부터 나선다
문재인정부는 여성 인력을 강화하고 실질적인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를 추진하고 성별 영향 분석평가와 성인지예산 성과 관리를 강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공공부문 여성 진출 확대를 위한 5개년 계획’을 올해 안에 수립해 관리직 공무원, 공공기관 임원, 관리자, 군·경찰 등의 여성 진출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분야를 막론하고 ‘유리천장’과 ‘유리장벽’을 동시에 허무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여성의 인력만 늘리는 게 아니다. 기관에서 실질적 결정권과 영향력을 가진 고위직 여성의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국방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여군은 1만 100여 명이다. 전체 장교 중 여군의 비율이 7, 부사관 중 여군의 비율이 4.6로 군 내 여성 간부의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경찰대 역시 1989년 처음으로 정원의 4.9를 여성으로 선발한 뒤 2014년부터 전체 선발 정원의 12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정부 위원회의 여성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여성 인재 DB’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여성 인재의 정보를 관리하고 필요시 경력과 전문성을 고려해 핵심 리더로 임용하는 시스템이다. 정부는 올해 다양한 분야의 여성 인재 10만 명을 등재하고, 특히 여성이 부족한 건설·건축·소방 등 분야의 여성 인재를 집중 발굴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공계 분야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각별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인력을 더욱 육성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여성 과학기술인 법·제도’를 운영하며 여성 과학기술인의 R&D 경력 복귀와 창업,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 실시한 여성 과학기술 인력 활용 실태조사에서는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19.4로 전년 대비 0.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신규 채용 비율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24.2였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의 취업을 지원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는 재취업의 통로만이 아니다. 새일센터는 여성의 취업을 도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교육훈련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제과제빵, 네일아트, 공예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교육훈련 외에도 탄소산업 분야 제조, 3D 프린팅 설계, 항공 드론 지도사, 엔진 전자제어 시스템 등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여성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여성의 발전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일이다. 유엔은 2015년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를 설정하면서 17개 목표 중 여성 발전을 빈곤 감소, 일자리 증진, 불평등 완화와 함께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단계적·지속적으로 여성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계속돼야 한다.
[위클리공감]
|